; 버지니아 울프 (ep.1) 2022. #1. 자기만의 방

 


마침 책방에는 한두 명 정도의 손님과 일하고 있는 분밖에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재즈에 들어가기 전부터 에어팟도 빼고 비장하게 구경 시작. 여느 대형 서점들과는 달리 '일', '예술', '여성'과 같은 테마에 따라 책을 제시했던 것이 흥미로웠다. 평소에는 읽지 않던 책이라도 누군가가 큐레이션해서 정성스럽게 쓴 글씨를 읽다 보면 이런 훌륭한 책을 내 인생에서 언제 다 읽어야지!라고 초조해하면서 ㅎㅎㅎ 괜히 한번 찾아보게 된다.
평소에는 책 욕심이 주기적으로 올라오지만 막상 사면 꽂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 인덱스 가게에서 구입한 책은 꼭! 읽어 보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둘러보았다. 민음사에서 선살문고라는 브랜딩으로 작은 총서를 정리해 놓았는데 그 안에 버지니아 울프의 나만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째 앞을 못 보게 지켜보고 있는 (재시청 중)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에서 여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핫가이 전교회장이 찾아 읽었던 책으로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들어와 더 잘 보인 것 같다.
책을 한 권 더 집어서 결재하고, 서점 안에 있는 적당한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러. 아침부터 라떼를 먹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라떼는 없었다고 하더라 ㅠㅠ 그냥 다른데 가서 읽을까 2초정도 고민했는데 그 분위기에 더 아픈 마음으로 메뉴를 읽고 다시 읽고 ㅎㅎ 데카페 아이스커피는 내려주신다는 기분만큼 상쾌하고 좋았다.
사실 책 앞부분을 읽다가 곧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워낙 오랜만에 글을 집중해서 읽은 탓에 내용 자체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라는 느낌으로 숱한 레토릭과 비유를 위해 읽은 부분을 금방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앞의 추천사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는 방법으로 집중력을 되찾으려 했다.*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재치있게 굴릴 필요도 없어요. 자기자신이아닌다른사람이되려고할필요도없습니다.
*당연히 걸어야 할 삶의 궤적, 그 틀에서 이탈하겠다는 나의 결정이 얼마나 정당하고 절박한지 내 안에 가득 찬 울타리를 지키고 선 양치기나 거대한 타인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항변하면 된다. - 타인의 시선이 내 안에 머무는 한 상상은 항상 검토되고 때때로 항변되고 설명되고 교정된다. 그래도 여자는 완전 자유인가? 선뜻 대답할 수 없다.(이민경)
며칠 전 친구를 만나 했던 말이 생각났다. 30대에 접어든 여성들에게 기혼자 선배들은 곧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조언한다. 결혼은 해야한다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해진 트럭 위에 있는 말이 트럭을 이탈하려고 할 때 고삐를 잡으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언제나 거기에 항변한다. '내 삶이 중요하고 자신감이 없고 이대로가 좋아' 등등어떤 이유든 그들에게는 상관없겠지만 보편적으로 정해진 길을 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나조차도 그 설득 대상에 포함된다
* 나는 그동안 울타리 밖에 나갈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구해온 용서와 그것을 위해 잘 준비한 근거와 애써 쌓은 성취, 그 익숙하고 지난한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어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달려볼 생각이다.(이민경)
고민은 짧게. 행동은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두 가지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려 읽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날 해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한테도 아부할 필요 없어요.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조금이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가장 큰 해방, 즉 사물을 생각할 자유가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 건물을 좋아하는지 아닌가? 저 그림은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 내 생각에는 그것이 좋은 책인가 나쁜 책인가?
'내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자유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집중하지 못한 이유는 거리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작가로서의 버지니아 울프가 겪고 있는 현실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희미한 안도감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처한 여러 상황과 가진 지위 등이 같은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타인의 울분, 당연하게 여기는 것 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저 말은 아주 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일 자유 '남의 시선'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의 것, 타인의 것, 사물 등을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갈등, 망설임 같은 게 좀 희미해지길 바라면서.
이번 주가 끝나기 전에 읽어야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L10 키보드가 포함된 휴대성! 아이뮤즈 LTE 태블릿 뮤패드

두통에 좋은 차&두통을 없애는 핵심 관리법! [서프라미칼]